다시 찾고 싶은 성지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쟈스민 | 입력 : 2018/07/04 [09:11]
충남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를 다녀왔다. 성인들의 활동무대가 충남지역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유적지는 당진과 보령, 아산, 서산 해미에 성당과 성지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것 같다.
당진 신리성지를 다녀온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라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는데 두 곳 중 어느 곳이 더 좋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성지라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보령 갈매못성지는 주변이 오천항이라 바닷가를 끼고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다는 장점이 조금 더 큰듯 싶었다.
이날 미사가 있어 성당에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방송으로 흘러나오는 신부님의 목소리를 잠시 엿들을 수 있었는데 신부님 또한 보령 갈매못성지는 사람들이 다시 가보고 싶은 성지 1위라며 자신이 선교활동을 하는 곳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시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령 갈매못 순교성지는 초기에 천주교인들의 신앙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던 내포지방의 연못이라 한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조선 제 5대 교구장이던 다블뤼 주교와 황석두 회장과 함께 당진에서 체포되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위앵신부와 오메트르 신부도 자수를 하였다. 충청수영에서는 갈매못을 처형장으로 정했기에 이곳이 순교유적지가 된 것이라 한다. 성당에는 이 5명의 성인의 흉상이 나란히 서 있다.
갈매못에서 서짓골까지 다섯 분의 성인들의 유해가 신자들에 의해 옮겨진 길을 따라 걸어보는 갈매못·서짓골 순례길이 있다.
찾아간 날에는 서산 해미에서 단체 순례자들이 방문하였다. 순례도장을 찍는 곳이 마련되어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순례자들 또한 많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산 해미에서 온 순례자들의 옆에 넙적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 순교터로 1886년 3월 30일 수난 성금요일에 성 다블뤼 주교, 성 오메트로 신부, 성 위앵 신부, 성 황석두 회장, 성 장주기 회장께서 순교한 곳이다. 성인들이 순교한지 59년 후인 1925년에 금사리본당의 정규량 신부가 목격증인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순교터와 장깃대 섰던 자리,임시 매장지를 확인하고 부지를 매입하여 성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성인들은 망나니의 칼날 아래에 한 분 한 분 목이 잘렸고 순교자들의 솟아오르는 피는 이 바닷가 모래사장을 짙붉게 물들여 놓았다. 다섯 분의 머리가 기둥 위에 걸렸을 때 은빛 무지개가 다섯 개가 하늘을 뚫고 내려와 주위를 놀라게 했다. (병인박해순교자 증언록, 220번)
보령 갈매못성지 기념관에는 다섯 분의 성인이 처음 선교활동을 할 때부터 순교를 하기까지의 벽화와 유해, 그들의 발자취를 볼 수가 있다. 특히 얼마전 다녀온 당진 신리성지의 정확한 명칭이 다블뤼주교유적지였기 때문에 다블뤼 주교의 활동을 접하며 그가 남긴 업적을 다시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형장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순교성지에 오게 되면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되뇌이게 되고 죽음과도 바꾼 그들의 신념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된다.
성당으로 향하는 십자가의 길에서는 예수님도 한낱 사람이었음을 인류를 대신해 과연 죽음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뇌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십자가의 길은 무겁고도 슬펐지만 그들의 빛나는 순교처럼 아름다웠다.
당진 신리성지와 마찬가지로 보령 갈매못순교성지 또한 유적지만 아니라면 연인이나 가족, 친구들끼리 여행을 와서 특별한 연출로 인증샷을 찍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성지이다. 그들의 종교를 지켜내기 위해 죽음을 택한 고귀한 성지이다. 오죽하면 이런 푯말들을 여러 곳에 붙여 놓았을까? 너무나 당연히 지켜야 할 예절인 것 같은데 성지에서만큼은 자제하도록 하자.
아름다운 성인의 발자취를 잠시 머물러 본 시간, 순교터 옆의 마지막 해당화의 향처럼 강한 여운을 남긴다. 보령 갈매못순교성지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
출처 : 충청남도 홈페이지
도민리포터 쟈스민님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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